제갈해리의 이야기 (45) 썸네일형 리스트형 독립적인 주체로서의 나 우리가 살아가면서 아마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대상은 가족일 것이다. 가족은 우리와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멀고도 복잡한 감정을 공유하는 대상일지도 모른다. 내 친구의 이야기다. 그는 가끔 부모님이 계시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고 한다. 친구가 어렸을 때부터 뭔가를 하기만 하면 친구의 부모님은 지나치게 간섭을 하시곤 했고, 부모님이 정한 집안의 규칙들을 친구에게 강요하시곤 했다. 예를 들어, 시험을 치고 나서 시험 결과가 안 좋게 나오면 시험을 본 자신의 기분이 나쁜 것을 생각하기보다는 부모님께서 점수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실까 더 걱정되었다고. 그 후로도 그런 상황은 계속 찾아왔다. 일을 구하든, 무엇을 하든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부모님의 반응이었다고. 그런 억압과 강요에서 벗어났으면 .. 사소하면서도 깊은 배려심 아침 일찍(7시쯤이었나) 눈이 떠졌다. 아무래도 잠자리가 바뀌어서 그런 모양이었다. 그는 자고 있었고, 나는 일어나서 제일 먼저 전자담배를 꼬나물고 피웠다. 그러면서 내가 니코틴 의존도가 높긴 하구나 싶었다. 테이블에는 어제 먹다 남은 해물찜과 소라 숙회가 놓여 있었다. 나는 약간 배가 고파 남은 음식물을 처리하기로 했다. 차갑게 식어버렸지만, 맛은 별 차이가 없었다. 그러면서 어제 있던 일을 일기로 작성해 브런치에 올렸다. 어제는 그와 극적인 화해를 하고서 긴장이 풀어져서 그런지, 아니면 일을 하고 와서 피곤해서 그랬는지 내가 먼저 곯아떨어졌다. 그는 잠든 나를 한 번도 건드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내가 잠을 한 번도 설치지 않은 것을 보면. 그렇다. 그는 그런 사소하면서도 깊은 배려심이 있었다. 나는 .. Fuck you, My love 꼬북이가 요즘 내게 자주 쓰는 말이 있다. "Fuck you, my love." 애인 사이에 왜 이런 욕을 쓰는지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Fuck you는 욕인데, 뒤의 my love는 또 뭔지 이해가 안 갈 수도 있겠다. 그래서 이 말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나는 평소에 내 마음대로 행동을 하기 때문에 가끔 꼬북이와 부딪힐 때가 많다. 꼬북이가 싫어하는 행동들을 많이 하는 편인데, 예를 들면 샤워할 때 수건을 들고 들어가지 않아 샤워 끝나면 꼭 수건을 꼬북이에게 달라고 하거나 수건을 가지러 젖은 몸으로 욕실을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면 꼬북이는 내게 수건을 주는 수고로움과 방바닥에 떨어진 물을 닦아야 하는 수고로움을 감당해야 한다. 꼬북이는 "좀 고쳐라."고 하지만, 나는 "알겠다."라고 하면서 .. 모순 모순 텅 빈 허무 속 홀로 빛나는 태양은 우주의 여백을 가득 채운다 태양의 불타는 심장을 움켜쥐려 투사가 되어 달려든다 태양은 맹렬히 자신을 불사르며 온몸을 옥죄어 온다 거대하고 압도적인 원형의 새하얀 화마 헛된 육체를 녹여 백골의 허약한 영만 남겨 놓는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다 그 순간, 태양의 심장에서 태초의 아담이 깨어난다 아담의 포악한 손아귀는 앙상한 목을 비틀고 절규에 찬 비명소리가 참지 못하고 터져 나온다 황금빛 빗줄기가 추적추적 내려온다 몸부림치던 육체를 쓰다듬으며 상처를 치유한다 아담은 허약한 영을 노려보지만 다가올 수 없다 끝나지 않을 대치, 불안한 휴전 아아, 벗어나고 싶다 그러나, 이 영원한 대치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육체가 불타고 영이 훼손되고 다시 회복된다 해도, 이것은 원의 .. 나는 오늘도 카페에 간다 나는 오늘도 카페에 간다. 가족들과 외식을 하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기 전, 뭔가 그냥 집에 들어가면 아쉬울 것 같은데 하는 마음에 가족들에게 카페에 가자고 얘기한다. 부모님은 뭐 하러 한 잔에 5천 원 하는 커피에 돈을 쓰냐며 반대했지만, 결국 내가 이겼다. 카페에 들어가 메뉴를 고르고 각자 취향에 맞는 커피를 고른다. 진동벨이 울리고 쟁반에 담긴 커피를 테이블로 가져와 가족들의 앞에 놓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우리는 카페를 어떤 용도로 이용하는가. 많은 사람들은 카페를 여러 용도로 이용하고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공부를 하기 위해, 어떤 사람들은 동료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 또 어떤 사람들은 인테리어나 분위기가 좋아서 카페를 이용할 것이다. 나는 주변 사람들과 대.. ISTP와 ENFP의 사랑 그와 내가 일을 마치고 만났을 때는 밤 10시 30분이었다. 먼저 퇴근한 그는 일이 늦게 끝난 나를 만나기 위해 1시간가량의 먼 거리를 와 주었고, 나는 그를 지하철 플랫폼으로 나가 마중했다. 우리는 같은 열차칸에서 조금은 어색한 대화를 나누다가 (그 전 날 카톡 대화로 다투었기 때문에) 5호선 화곡역에서 내렸다. 우리는 미리 예약한 모텔로 가서 배달 앱으로 해물찜을 주문하고, 본격적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그는 모텔로 들어오기 전부터 나에게 뭔가 할 말이 많은 눈치였다. 아니나 다를까, 방에 들어가자마자 갑자기 자신의 인생 스토리를 얘기하는 게 아닌가. 아니, 나는 우리가 어제 싸운 이야기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은데... 그렇지만, 그의 말을 막으면 정말 화를 낼 것 같아 잠자코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김치와 치즈 2018년 1월 24일부터 사귀기 시작한 몽실이(나의 별명. 살이 몽실몽실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와 꼬북이(애인의 별명. 애인이 거북이를 좀 닮아서 생긴 별명인데, 좀 더 귀엽게 순화해서 포켓몬스터의 꼬부기를 벤치마킹함)는 2020년 11월 20일 오전 12시를 기점으로 1032일이 되었다. 첫 만남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에 대해 몰랐던 사실들이 하나씩 생기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김치와 치즈. 김치 없이 못 사는 나와 치즈라면 사족을 못 쓰는 꼬북이. 반대로 치즈 냄새를 너무 싫어하는 나와 김치 냄새를 참지 못하는 꼬북이. 우리는 함께 살면서 이 문제로 여러 번 부딪혔다. 얼마 전, 엄마가 집에서 담근 총각김치를 싸 주셔서 옷과 책 등 짐과 함께 문제의 그것을 꼬북이의 집으로 가져왔다. 꼬.. Muse 뮤즈 나는 짙고 푸른 호수 안에 완전히 결박되었다 깊은 심해에 정박해있던 나의 유해는 어느덧 끌어올려져 저 넓은 혼돈으로 찬란한 여행을 떠난다 뿌연 연기는 침잠한 어둠의 얼굴을 흐릿하게 뒤흔들어 놓고 고혹한 장밋빛 향기는 내 시야를 어그러뜨려 놓는다 공간을 가득히 메우는 째즈의 깊고 묵직한 고동소리는 푸른 돛을 단 항해사의 얼굴을 비춘다 문자들은 머나먼 세계의 경계를 흐트러뜨리고 두 문자는, 온전히 남아 무지하고도 슬픈 백지를 채운다 서로의 불투명한 문자들은 잔뜩 부푼 성기를 움켜쥐고 태초의 에덴에서 갈갈이 해체된다 잡아라, 잡아라 항해와 문자 사이에 진리에의 배반을 외친다 아아, 나는 깊고 푸른 호수 속에 정박되어 있다 나의 배가 항구히 헤엄칠 그 호수 속에 이전 1 2 3 4 5 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