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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해리의 이야기/몽실이와 꼬북이

김치와 치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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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실이와 꼬북이

 

  2018년 1월 24일부터 사귀기 시작한 몽실이(나의 별명. 살이 몽실몽실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와 꼬북이(애인의 별명. 애인이 거북이를 좀 닮아서 생긴 별명인데, 좀 더 귀엽게 순화해서 포켓몬스터의 꼬부기를 벤치마킹함)는 2020년 11월 20일 오전 12시를 기점으로 1032일이 되었다. 첫 만남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에 대해 몰랐던 사실들이 하나씩 생기기 시작했다.

 

몽실이와 꼬북이의 김치 치즈 전쟁

 

  그 대표적인 것이 김치와 치즈. 김치 없이 못 사는 나와 치즈라면 사족을 못 쓰는 꼬북이. 반대로 치즈 냄새를 너무 싫어하는 나와 김치 냄새를 참지 못하는 꼬북이. 우리는 함께 살면서 이 문제로 여러 번 부딪혔다.

 

  얼마 전, 엄마가 집에서 담근 총각김치를 싸 주셔서 옷과 책 등 짐과 함께 문제의 그것을 꼬북이의 집으로 가져왔다. 꼬북이는 엄마가 주셨다 해서 겉으로 내색은 하지 못하고 인상만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나는 아직 덜 익은 총각 김치통을 비닐봉지로 싸서 익으라고 방 한쪽에 놔두었다. 꼬북이와 내가 살고 있는 방은 작은 원룸이었기 때문에 총각김치 냄새가 퍼지기가 쉬웠다.

 

  나는 김치를 좋아하고, 김치 냄새를 나쁘게 보지 않기 때문에 김치통에서 나는 냄새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김치 냄새를 지극히 혐오하는 꼬북이는 반찬통에서 나오는 그 냄새를 견딜 수 없어했다. 그 견딜 수 없음은 내가 라면을 끓여 먹거나 밥을 먹을 때 김치통에서 총각김치를 꺼내자 극에 달했다.

 

  "그것 좀 어떻게 할 수 없어?"

  "왜 김치도 못 먹게 하냐."

  "그럼 빨리 옮기고 닫아. 그리고 빨리 먹고 치우고."

 

  꼬북이는 코를 움켜쥐며 코맹맹이 소리로 얘기했다. 나는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한국 사람이 김치 못 먹는 게 말이 되나 싶었다. 그리고 김치 냄새를 무슨 전염병 보듯이 생각하니 더 이해하기 힘들었다. 꼬북이는 내가 총각김치를 먹고 남은 접시를 설거지통에 놔두자, 다시 화를 냈다.

 

  "빨리 설거지해."

  "왜? 배불러서 움직이기 힘든데, 좀만 배 꺼지고 설거지할게."

 

  나는 배를 긁으며 귀찮은 듯 꼬북이에게 말했다. 그는 답답한 듯한 표정을 짓더니, 본인이 직접 그 접시를 설거지했다. 설거지를 하고 나서도 주변에 냄새가 남아 있는지 확인하는 꼬북이었다.

 

  반면에 나는 치즈 냄새를 정말 싫어한다. 치즈에서 나는 그 발 구린내 냄새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꼬북이가 배달음식을 주문하면 떡볶이를 주문해도 치즈떡볶이, 돈가스를 주문해도 치즈돈가스, 찜닭에도 치즈가 올려져 있다. 피자 위에 두껍게 쌓인 치즈 덩어리만 봐도 몸서리가 쳐진다.

 

  나는 다른 발효식품, 요구르트나 된장, 청국장 같은 건 정말 잘 먹는다. 그것들은 내 입맛에 맞는다. 그런데 이상하게 치즈만은 맛있지가 않고 별로였다. 치즈가 열을 받아 쭉 늘어지면 무슨 껌딱지가 늘어져 있는 것처럼 보기 싫다. 한 번은 꼬북이가 로스트 치킨과 시카고 피자를 주문했는데, 그 두꺼운 시카고 피자에 있는 치즈와 피자에서부터 방 안에 온통 퍼져 있는 치즈 냄새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왜 하필 또 피자를 시켰냐? 내가 치즈 싫어하는 거 알잖아."

  "나는 치즈 좋아한다고. 네가 코 막고 있어, 그럼."

 

  우리는 그렇게 대놓고 상대방을 무시하곤 했다. 그러다가 정말 제대로 싸운 것은 내가 꼬북이와 말다툼을 할 때, 먹고 있던 김치 접시를 그에게 던진 일이었다. 그는 말 그대로 패닉 상태가 되었고, 한동안 얼어붙어서 움직이지를 못했다. 한 5분 정도 지났을까, 그는 조용히 화장실로 가서 샤워기 물에 몸을 맡겼다.

 

  그렇게 싸울 때마다 우리는 서로에게 약점이 될 만한 것들을 대놓고 건드리기도 하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다. 나도, 꼬북이도 악에 받쳐서 머리끄덩이를 잡고 싸우거나 주먹으로 볼을 날린다거나 한 적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몇 시간이 지나면 다시 화해를 하고 사과를 했다.

 

출처 : 구글 이미지

 

  그런 싸움과 화해가 반복되면서 우리는 한 가지씩 배웠다. 첫 번째는 우리가 헤어지려는 마음이 없다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헤어지려는 마음이 없다면 싸우더라도 악에 받쳐 싸우지 말고, 말다툼 정도로 끝내자는 것. 또, 세 번째는 말다툼 정도로 끝내고 나서 서로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자는 것. 이 세 가지면 보통 싸움이 일어나도 서로 생각할 시간을 가진 다음, 상대방에게 사과를 하고, 자신이 잘못한 것이나 느낀 감정에 대해서 말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꼬북이가 싫어하는 것을 되도록이면 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기로 했고, 그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제 김치를 먹을 때면 꼬북이에게 먼저 이야기를 하고 허락을 구한 다음 김치를 접시에 덜어먹는다. 그리고 김치를 먹고 난 뒤에 접시를 바로 설거지한다. 만약 허락하지 않는다면 나는 김치를 먹지 않는다. 그 또한 마찬가지다. 그도 치즈가 든 음식을 주문할 때면 나에게 먼저 이야기해 허락을 구하고 내가 허락하면 주문한다. 내가 허락하지 않으면 치즈를 넣지 않거나 별도로 자기가 먹을 것만 주문한다.

 

  우리는 조금씩 서로의 다름에 대해서 인정해 주기 시작했다. 내가 매사에 '빨리빨리'를 외치는 것, 꼬북이가 화가 나면 오버하면서 화를 낸다는 것 등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모습 또한 내가 사랑하는 연인의 모습이라고 인정했다. 그러자, 예전에는 치고받고 싸웠던 원수가 이제는 내 옆에서 곤히 자고 있는 귀여운 꼬북이가 되어 있었다.

 

  생각을 바꾸면 많은 것들이 해결된다. 내가 받은 피해에 대해서만 생각하지 않고 내가 주고 있는 피해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몽실이와 꼬북이의 일기는 계속된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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