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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세상 이야기/좋은 글 따뜻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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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만심과 교만함 한 수도원에 자신의 지식만을 자랑하여 다른 이들에게 거만하다는 평을 받는 젊은 수도사가 있었습니다. 한 번은 원로 수도사가 정원에서 흙을 고르고 있었고 그곳을 지나던 젊은 수도사를 불러 세웠습니다. "이 단단한 흙 위에 물 좀 부어주겠나?" 젊은 수도사가 흙 위에 물을 부었습니다. 그러나 물은 땅에 스며들지 않고 양쪽으로 흘러가고 말았습니다. 원로 수도사는 옆에 있는 괭이를 들어 땅을 파고 흙덩어리를 깨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곤 부서진 흙을 모은 뒤 다시 한번 물을 부어보라고 말했습니다. 젊은 수도사는 부서진 흙 위로 다시 물을 부었고 그러자 물이 잘 스며들며 부서진 흙이 뭉쳐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원로 수도사가 말했습니다. "이제야 흙에 물이 잘 스며드는구먼. 이렇게 해야 싹이 나고, 꽃을 피우고 열매..
법정, <맹목적인 신앙은 미신보다 더한 것> 9월 3일에 보내 준 네 글 잘 받았다. 지금 네가 체험하고 있는 하루하루의 생활이 마치 지난날 내 자취를 되풀이하는 것만 같아 심히 서글프다. 그러나 자기가 현재 겪고 있는 운명에 대해서 스스로 위안하는 철학을 갖는 것도 현명한 생활 태도일지 모른다. 말하자면 나는 이처럼 인생에 대해서 남이 겪지 못한 풍부한 체험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 말이다. 그런 때 나는 베토벤에게서 혹은 그 밖의 훌륭한 인격들의 생애에서 위안들을 받곤 했었다. '괴로움을 뚫고 기쁨으로!'라는 베토벤의 철학. 고난 속에서도 훌륭한 음악을 탄생시킨 베토벤! 나의 젊은 날의 스승이여! 책장 속에 로맹 로랑이 쓴 가 있을 것이다. 아직 안 읽었다면 읽어 보아라. 재독도 좋다. ​ 그래, 좋다. 크리스찬! 사람은 종교적인 생활을 가져야 할..
고현, <작은 등불 하나> 살다 보면 예감이 적중할 때가 있다. 서울 출장길에 막연한 기대로 법련사에 들렀더니 법정 스님이 와계셨다. 반갑게 친견 드리고 주지인 청학 스님과 차담을 나눈 자리에서 스님께서 불쑥 한 말씀 꺼내셨다. "40년 동안 속가에 신세만 지고 살다 보니 무언가 밥값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만약 불교가 중심이 된 '사회 모임' 하나 만들고 싶다, 한다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벌써 10여 년을 뵙다 보니 번거롭고 머리 무서운 일은 일부러 피하시는 성품인데 이 무슨 뜻밖의 말씀일까. "모임의 명칭은 '나누는 기쁨'으로 하고 싶어요. 삭막한 세상에서 이웃과 더불어 나누며 산다, 특히 어려운 삶을 사는 이웃들에게 정신적, 물질적 위로가 될 수 있는 그런 모임을 하나 만들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되는가 말입..
변택주, <쓰던 말을 버리고> 불교는 자비로운 종교, 기독교는 사랑스런 종교라고 말한다. 자비와 사랑은 다르지 않다. 자비 ‘자’는 우리말로 ‘사랑’으로 새긴다. 그런데 이 말을 그저 추상명사 사랑으로만 이해하면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랑인지 종적이 막연해진다. 불교에서 말하는 자는 팔리어 ‘우정’에서 온 말이다. ​ 우정은 무엇인가? 평등이자 연대, 함께함이다. 어우렁더우렁 행복한 관계에서 나오는 순정한 마음이다. ‘비’는 무엇인가? 나 아닌 목숨붙이 불행을 진심으로 아파하는 것이다. 예수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했지만, 사랑해야 할 원수마저도 없는 것이 사랑이고 자비다. 이 자비심 바탕 위에서 부처님은 자신이 이제껏 써온 익숙한 말을 버리고 서민들이 흔하게 쓰는 말로 말씀하기 시작했다. ​ 부처님이 자신이 쓰던 상류사회 말을 버리고 듣..
법정, <종교적인 삶>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종교는 무엇인가? 불교도, 기독교도, 혹은 유대교도 회교도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종교는 바로 ‘친절’입니다. 친절은 자비의 구체적인 모습입니다. ‘사랑하다’는 매우 아름다운 말입니다. ‘사랑하다’ 다음으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사는, 이웃과 남을 ‘돕다’입니다. 자신에 대한 염려에 앞서 남을 염려하는 쪽으로 마음을 돌릴 때, 인간은 비로소 성숙해집니다. 자기밖에 모른다면 아직 진정한 인간이 아닙니다. ​ 석가모니 부처님은 한평생 많은 위대한 가르침을 펼쳤습니다. 그 가운데 핵심은 ‘자비’입니다. 곧 사랑입니다. 부처님은 자비를 이야기했고 그것을 실천했습니다. 자비의 실천이 있었기에 불교가 종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깨달음만을 주제로 삼았다면 불교는 종교로..
법정, <부처님 오신 날이 아니라 부처님 오시는 날> 길상사가 위치한 성북동에는 외국 공관이 많기 때문에 해마다 부처님오신날이면 근처 많은 외국인들이 연등 구경을 하러 절을 찾는다. 올해는 3천여 개의 연등이 걸렸다. 한국 조각계의 거장이며 천주교 신자인 최종태 선생이 2000년 4월에 화강암으로 제작한 마리아상을 닮은 관세음보살상도 근처 가톨릭 수도원의 사제와 수녀들을 자주 초대한다. 이날 스님은 법문을 하기 위해 여느 때처럼 강원도 오두막에서 어두운 새벽에 출발해 먼 길을 왔다. 절마당에서 마주친 벽안의 서양인 여성이 스님에게 합장하며 인사를 건넸다. “Happy Buddha’s birthday!(부처님 생일을 축하합니다)” 그러자 스님도 합장하며 그 여성에게 화답했다. “Happy your birthday!(당신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 부처님 오..
법정, <마하트마 간디의 종교> 편집자의 요구는 ‘기독교 밖에서 본 예수’를 써 달라고 하지만 나의 입장으로는 아무래도 감당하기가 거북스럽다. 부끄럽게 생각하는 바이지만, 예수의 인격에 대해서 평가할 만큼 예수의 실상을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역사상의 한 인물을, 그것도 사람의 아들이기보다는 어마어마한 신의 아들로 추앙받는 인물을 함부로 다룬다는 것은, 이방인의 처지로 보아 실례를 범할 위험이 따른다. 다른 하나의 이유로는, 밖에서 봐 가지고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실체다. 산은 저 들에게 바라봐야 더 잘 보인다는 말에는 수사학적인 거짓이 섞여 있다. 산에 들어가 살아보지 않고서는, 또한 몸소 산이 되어 보지 않고서는 산의 정체를 알 수 없다. ​ 인류 역사상의 한 거인을 밖에서 보고 이해하려는 것은 마치 ..
법정, <고통은 완성을 위한 시련> 즐거워야 할 방학이 어쩐지 무섭고 두려움이 앞선다는 너의 그 불안한 마음을, 어딜고 훨훨 떠나고 싶다는 어린 마음을 나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너의 글에서 학창 시절의 내 모습을 읽을 수 있었음이 심히 서글펐다. ​ 마음하는(마음을 다해 사랑한다는 뜻으로 쓴 말인 듯 하다.) 아우야! 마음 기댈 곳 없이 안타까이 헤매는 너에게 나는 무엇을 줄 수 있을 것인가? 나는 무능하다. 힘이 없구나. 그지없이 안타까워 할 뿐이다. 그러나 결코 실망하진 말아라. 우리들의 앞길은 아직도 멀다. 지금의 고통은 우리들 인격을 완성해 가는 데 하나의 시련으로 봄이 좋을 것이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다음의 말은 루터가 아니라 네덜란드 철학자 스피노자가 한 말이다.)는 이렇게 말한다. ​ ‘아무리 세계의 종말이 명백하다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