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21일 토요일 새벽의 일을 얘기해 보려고 한다. 꼬북이는 금요일과 토요일 야간 편의점 일을 하는데, 내가 가끔 가서 말 상대도 되어주고 새벽 물류를 도와주기도 한다. 나는 꼬북이가 출근하는 10시보다 좀 전인 9시쯤에 잠들어 새벽 5시쯤에 일어났다. 새벽 4시 30분에 형이 일하는 매장에 물류가 들어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마스크를 쓰고 부랴부랴 편의점으로 향했다.
꼬북이는 때마침 물류 정리를 하고 있었다. 나는 꼬북이가 들고 있는 바코드 검사 기계를 넘겨받아서 물류 바코드를 찍었고, 꼬북이는 바코드가 찍힌 물품들을 정리했다. 꼬북이가 쿨러(대형 냉장고)에 술과 음료를 채우는 동안, 나는 라면이나 식료품을 진열했다. 그렇게 몽실이와 꼬북이가 힘을 합쳐 물류를 정리하니, 아침 6시도 채 안 된 시간에 물류가 다 정리됐다. 우리는 물류 정리를 끝내고 카운터에 나란히 앉아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전에는 귀찮아서 꼬북이가 일할 때 도와줄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꼬북이가 집 밖에 나가서 일하는 수고를 느꼈기 때문일까. 시간이 되면 내가 자청해 편의점으로 와서 일을 돕는다. 꼬북이가 일하는 편의점이 자리한 동네는 야간 손님들이 꽤 오기 때문에 손님이 있을 때 물류가 오면 물류 하느라, 계산하느라 꼬북이가 바빠진다. 그래서 물류 시간에 맞춰 와 꼬북이가 물류 정리하는 동안 나는 카운터를 본다. 그렇게라도 하면 꼬북이가 물류 정리하는 데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꼬북이는 나에게 굳이 나올 필요 없다고 말하면서도 은근히 내가 도와주기를 바라는 눈치다. 그럴 때면 꼬북이가 귀엽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혼자서 일하는 것보다 둘이서 함께 일하는 게 더 효율적이고 든든하다, 라는 생각으로 꼬북이를 돕는다. 꼬북이가 나로 인해 조금이라도 쉴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가 물류를 빨리 정리하고 쉬는 시간은 꼬북이가 혼자 일했을 때보다 1, 2시간 더 늘어난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손님에 관한 얘기를 하기도 하고, 친구 험담도 하고, 우리 생활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한다. 상대 없는 데서 하는 험담은 어찌나 고소했는지 몇 시간을 떠들어도 지치질 않는다. 가끔 보면 그런 대화를 에세이나 소설 거리로 써 보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내가 기억력이 좋지 않아 잘 잊어버리기 때문에 메모를 해야 할 것 같다.
아무튼 우리는 손님이 오지 않는 심야 시간 동안 다양한 얘기를 나눈다. 어떨 때는 우리의 미래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꼬북이는 주로 현실적인 생활에 대해서 얘기하는 편이고, 나는 좀 더 큰 이상적인 목표에 대해서 얘기를 하는 편이다. 나는 꼬북이의 현실적인 조언을 받아들이고, 꼬북이는 나의 목표에 대해서 귀 기울여 듣는다.
예를 들면, 요번에 생활비에서 배달음식 비중이 많아서 지출이 많이 나갔으니, 다음부터는 마트에서 장을 봐서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는 게 좋겠다고 꼬북이가 얘기하면 나는 알겠다고 대답한다. 솔직히 우리가 배달 음식에 너무 중독되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나 같은 경우는 어딜 가 보자, 뭘 해 보자, 무슨 음식을 먹어 보자 같은 것들을 많이 얘기한다. 그러면 꼬북이는 그중에서 현실적으로 될 것과 안 될 것은 구분해서 얘기해준다. 내가 허무맹랑하게 벌여놓기만 하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조개구이 꼭 먹으러 가 보자. 네이버에서 찾아보니까 1인분에 25,000원인데, 무한리필이래. 실컷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래. 그 대신 조개구이 먹으러 간 뒤에는 생활비를 조금 아껴 써야 돼. 그래야 다음번에도 다른 좋은 음식점에 갈 수 있지."
"그래요. 나는 조개구이 먹으러 갈 생각에 너무 좋은데."
"나도 좋아."
우리는 서로 말하는 방식이 많이 다르지만, 공통의 관심사가 있기 때문에 말하는 방식이 달라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이번에는 그것이 조개구이였다. 그렇게 조개구이, 조개구이 노래를 불렀는데, 드디어 먹으러 간다니, 너무 행복했다. 주로 감성이 터지면서 감정을 표출하는 건 내 쪽이었다. 꼬북이는 그런 나를 보면서 흐뭇해하는 편이었다.
야심한 시간의 대화는 그렇게 몇 시간 동안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우리는 굵직굵직한 얘기부터 사소한 이야기까지 안 하는 이야기가 없었다. 가끔은 서로에 대한 불만도 얘기하고, 오해를 풀기도 했다. 대화를 할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는 다행이었다. 예전에는 대화를 하면 자기주장만 하기 바빴는데, 꼬북이와 함께 일을 하고 조용한 시간에 대화를 나누다 보니, 차츰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그래서 동질감과 대화가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 8시가 좀 못 되어 나는 편의점에서 나와 집으로 향한다. 꼬북이와 교대하는 점장님께서 내 얼굴을 보시면 안 된다는 꼬북이의 의견 때문이었다. 나는 그저 우렁 각시처럼 잠깐 와서 꼬북이를 도와주고 가면 그뿐이었다. 내 존재는 점장님에겐 비밀이다. 오늘도 편의점 우렁 각시는 제 할 일을 마치고 귀가한다.
몽실이와 꼬북이의 연애일기는 계속된다.
To be continued...
'제갈해리의 이야기 > 몽실이와 꼬북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꼬북이의 요리 (0) | 2023.03.25 |
---|---|
꼬북이가 없는 하루 (0) | 2023.03.24 |
함박눈 오던 날 (2) | 2023.03.17 |
맛평의 대가, 꼬북이 (0) | 2023.03.13 |
프리지아와 에리카 (2) | 2023.03.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