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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 / 송찬호
가방이 가방 안에 죄수를 숨겨
탈옥에 성공했다는 뉴스가
시내에 쫘악 깔렸다
교도 경비들은, 그게 그냥 단순한
무소가죽 가방인 줄 알았다고 했다
한 때 가방 안이 풀밭이었고
강물로 그득 배를 채웠으며
뜨거운 콧김으로 되새김했을 줄
누가 알았겠냐고 했다
끔찍한 일이다 탈옥한 죄수가 온 시내를 휘젓고 다닌다면
숲으로 달아난다면
구름 속으로 숨어든다면
뿔이 있던 자리가 근지러워
뜨거운 번개로 이마를 지진다면,
한동안 자기 가방을 꼼꼼히 살펴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열쇠와 지갑과 소지품은 잘 들어있는지
혹, 거친 숨소리가 희미하게나마 들리지 않는지
그 때묻은 주둥이로 꽃을 만나면 달려가 부벼대지는 않는지
-2008년 미당문학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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