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괄호론 / 서덕민
괄호는 묶음의 형식이지만
비어있음의 형식이기도 하다
무엇인가를 잔득 묶고 있으면서도
텅 비어 있는 괄호는 어쩌면
모호함의 형식일 수도 있다
가령 내 어머니가 그렇다. 그녀는
주로 미지수를 묶고 다니므로
무엇인가 들어 있다 할지라도
전혀 알아볼 수 없다
아니, 텅 비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괄호는
등호를 거리낌없이 뛰어넘어도
결코 균형이 무너지는 법이 없다
괄호가 사라진 자리에 어룽어룽한 자국.
어머니란 한 쪽 변에
잠시 여자를 비워둔 여자일까
미지수를 묶고 다니는 그녀
미간을 둥그렇게 찡그리며
눈물을 흘리면, 작고 예쁜 괄호가 생긴다
내가 앓아야 할
세상의 모든 아픔 앞에서
그녀의 눈가는 언제나 먼저 축축해지는 것이다
나도 별수없이 그녀의 괄호안에 묶이는 것일까
그렇게 그녀가 모두 묶어서
미리 중심을 잡고 있는 것 아닐까
괄호란 여자의 형식이다
어렵고 아픈 것들로 가득찬
텅 비어 있는 내 어머니의 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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