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렸을 때부터 드라마를 즐겨 봤습니다. 드라마에 나오는 등장인물들과 배경, 사건들이 생생하게 그려져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드라마를 보면 참 다양한 성격의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저는 그중에서도 매력적인 악역 캐릭터가 끌리더라고요. <별에서 온 그대>의 신성록이라든가, <태조 왕건>의 궁예 같은 경우가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오늘 이 두 악역에 대해서 얘기하려고 하는 건 아닙니다. 저는 오늘 <선덕여왕>의 미실에 대해서 얘기하려고 합니다.
2009년 MBC에서 방영한 <선덕여왕>은 선덕여왕 신드롬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풍성한 볼거리와 탄탄한 스토리로 매회 시청률을 경신했는데, 그런 <선덕여왕>의 시청률을 견인한 가장 큰 공신은 바로 미실 역의 고현정이었습니다. 첫 회 등장했을 때부터 사람을 인정사정없이 죽이는 미실의 미친 카리스마에 시청자들 대부분이 놀라기도 하고 매료되기도 했었죠.
미실은 악역 중에서도 정말 난 캐릭터인데요. 미실은 통찰력, 인용술, 카리스마 모든 걸 갖춘 여걸이었습니다. 진흥왕의 애첩이면서도 옥새를 관장하는 새주직을 맡았고, 진흥왕의 둘째 아들인 금륜 왕자를 유혹해 황제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진지제(금륜 왕자)가 자신을 황후로 만들어주지 않자, 자신의 세력을 규합해 진지제를 폐위시켜 버렸습니다. 실로 엄청난 실행력과 카리스마였죠.
미실에게는 미생, 설원, 칠숙 등의 많은 인재들이 있었고, 그 인재들을 적재적소로 이용하며 자신의 세력을 구축했습니다. 미실은 한 마디로 용인술이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미실은 자신의 귀족 세력을 단단히 하기 위해 색공으로 세종, 설원 등의 남편들을 두고 그들 위에 군림했습니다. 비주류 역사서 <화랑세기>에 보면 진평왕을 말 한마디로 굴복시켰다는 일화도 있는데, 이걸 보면 대단한 여걸인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미실은 황권을 위협하는 귀족 세력의 우두머리로 덕만에게는 정적이었습니다. 미실은 자신의 적인 덕만에게 신권(神權)을 빼앗기지만, 공주가 된 덕만과 경쟁하면서 자신의 노하우를 알려주기도 하고 자신도 황후의 꿈에서 벗어나 나라의 주인이라는 꿈을 꾸기 시작하는 등 함께 성장해 나가는 모습도 보여주기도 합니다.
결국 미실은 정변을 일으켜 신국(신라)을 차지하려고 하지만, 덕만의 계책에 무너지면서 독약을 먹고 스스로 자결하는 것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미실은 죽어가면서도 자신의 아들인 비담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는 등 그동안 무심하게 대해왔던 모습과는 다르게 어머니로서의 모습도 잠깐 보여줬습니다.
고현정은 미실 역으로 캐스팅되면서 눈썹 하나하나, 걸음걸이 하나하나에도 기품 있고 카리스마 있는 미실의 모습이 담기도록 연기했습니다. 미실이 쓰고 있는 가채와 의복은 회가 거듭될수록 점점 더 화려해졌고, 마침내 미실의 최후를 촬영하는 장면에서는 은색의 화려한 가채와 검은색과 짙은 홍색으로 이루어진 세련된 의복을 착용한 고현정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시청자들은 그때 <선덕여왕>을 보면서 저마다 고현정이 미실을 완벽하게 소화해냈다고 극찬을 했습니다. 고현정의 표정과 목소리 등 흡입력 있는 연기에 시청자들은 울고 웃기도, 두려워 떨기도 하면서 드라마를 몰입해서 봤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선덕여왕>이라는 드라마로 미실 역의 고현정은 그 해 연기대상을 거머쥐게 되었고, 이것은 고현정의 이름이 대대적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됐습니다. 실제로 미실 역을 맡은 고현정은 카리스마 있고 당당한 여성이라고 알려져 있죠.
<선덕여왕>은 지금도 제 인생의 띵작 드라마 중 하나입니다. 이 드라마는 박상연, 김영현 작가가 썼는데, 김영현 작가는 <대장금>, <서동요>, <뿌리 깊은 나무>, <육룡이 나르샤>와 같은 대작들의 극본을 쓴 작가고, 박상연 작가는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대본을 쓴 작가입니다. 두 작가 모두 훌륭한 집필을 하는 작가들이죠. 얼마 전에 방영한 <아스달 연대기>를 집필한 작가도 이 작가들입니다.
띵작 드라마 <선덕여왕>의 최대 수혜자, 최고의 악역 미실은 제 인생에서 지워지지 않을 소중하고 의미 있는 악역이었습니다. 미실 역에 캐스팅된 고현정 씨에게도 훌륭한 연기를 보여줘서 고맙다는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미실이라는 캐릭터를 정말 실감 나게 만들어 준 박상연, 김영현 두 작가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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