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28) 썸네일형 리스트형 김애란, <건너편> 中 기억에 남는 문장들 도화는 밤새 내장 안에서 녹색 숯이 오래 타는 기운을 느꼈다. 낮은 조도로 점멸하는 식물에너지가 어두운 몸속을 푸르스름하게 밝히는 동안 영혼도 그쪽으로 팔을 뻗어 불을 쬐는 기분이었다. 김애란, ⌜바깥은 여름⌟ 중 p.86 파이프에서 물이 새듯 미래에서 봄이 새고 있었다. (중략)... 아무렴 한창때가 지났으니 나물맛도 알고 물맛도 아는 거겠지. 살면서 물 맛있는 줄 알게 될지 어찌 알았던가. (중략)... 자신도, 이수도 바야흐로 '풀 먹으면' 속 편하고, '나이 먹으며' 털 빠지는 시기를 맞았다는 걸. 김애란, ⌜바깥은 여름⌟ 중 p.87 눈 한 송이의 의지가 모여 폭설이 되듯 시시티브이에 비친 풍경이 모여 교통방송의 '정보'가 됐다. (중략)... 수사도, 과장도, 왜곡도 없는 사실의 문장을.. 먼지의 계보 / 심강우 먼지의 계보 / 심강우 마루를 닦다 보면 먼지 아닌 것들이 오해받는 경우도 있다 아무리 문질러도 겉장이 읽히지 않는 나뭇결과 다른 형태소를 만날 때가 있다 곁방살이의 눈치처럼 찐득하게 붙어 있는, 한때는 일거수일투족 달콤한 풍미를 발하던 때깔이 거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먼지의 본산을 이루었다 먼지가 먼지를 불러 더 큰 먼지를 쌓는 건 생로병사의 이름으로 증빙된 가계의 내력에도 소상히 나와 있지만 제 얼굴을 가질 수 없다는 점에서 오늘도 분분한 의견과 고요한 탄식이 있다 길을 낸다는 이유만으로 앞의 것들을 모질게 닦은 적이 많다 지금 당신이 들여다보는 먼지를 뒤집어 쓴 것들 내가 아니면 모두 먼지가 되어야 하는 것들 먼지가 길을 증명해 보인다고 항변하는 것들 대개는 밖에서부터 시작되지만 더러 안에서부터 먼.. 폭력적인 세계 속의 '나' / 황정은, <복경> | 소설 감상 이것은 내가 관찰한 일이다. 이른 아침 출근을 하기 위해 사람들로 붐비는 지하철 승강장에서 벌어진 일이다. 승강장은 줄 서서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빼곡하게 차 있었다. 5분쯤 지났나, 열차가 도착해 열차에서 사람들이 내리고 승강장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열차에 타려고 하는 순간, 한 할아버지께서 뒤늦게 열차 안에서 승강장으로 빠져나오려고 하고 계셨다. 그런데 사람들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할아버지를 밀고 우격다짐으로 열차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노쇠한 할아버지는 힘을 쓰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밀려 들어가셨다. 그때 어떤 한 아주머니가 하는 말이 내 귀에 들렸다. "할아버지가 괜히 늦게 내려 가지고 다른 사람들까지 못 타게 만들려고 하고 있네." 짜증 섞인 말투였다. 그 아주머니의 말에 할아버지는 고개.. 세월호 이후, 상실에 대처하는 김애란의 자세 세월호 이후, 상실에 대처하는 김애란의 자세 소설집 ‘바깥은 여름’ 출간 아이 잃은 부모 이야기 ‘입동’ 등 죽음과 상실 다룬 단편 일곱 묶여 www.hani.co.kr 김애란의 초기 단편과 첫 장편 에는 삶의 아픔과 시련을 씩씩한 웃음으로 돌파하는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이번 소설집에는 웃음이 거의 나오지 않고 나오더라도 인용한 구절에서 보듯 어딘지 불길하고 수상쩍은 웃음뿐이다. 그것이 어느새 30대 중후반에 이른 작가의 나이 탓인지 세월호로 대표되는 시대의 상처 탓인지는 불분명하다. 어쨌든 의 거주민들은 “없던 일이 될 수 없고, 잊을 수도 없는 일”(‘노찬성과 에반’)에 시달리거나, “좋은 일은 금방 지나가고, 그런 날은 자주 오지 않으며, 온다 해도 지나치기 십상임을”(‘풍경의 쓸모’) 아는 이들이.. 사소하면서도 깊은 배려심 아침 일찍(7시쯤이었나) 눈이 떠졌다. 아무래도 잠자리가 바뀌어서 그런 모양이었다. 그는 자고 있었고, 나는 일어나서 제일 먼저 전자담배를 꼬나물고 피웠다. 그러면서 내가 니코틴 의존도가 높긴 하구나 싶었다. 테이블에는 어제 먹다 남은 해물찜과 소라 숙회가 놓여 있었다. 나는 약간 배가 고파 남은 음식물을 처리하기로 했다. 차갑게 식어버렸지만, 맛은 별 차이가 없었다. 그러면서 어제 있던 일을 일기로 작성해 브런치에 올렸다. 어제는 그와 극적인 화해를 하고서 긴장이 풀어져서 그런지, 아니면 일을 하고 와서 피곤해서 그랬는지 내가 먼저 곯아떨어졌다. 그는 잠든 나를 한 번도 건드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내가 잠을 한 번도 설치지 않은 것을 보면. 그렇다. 그는 그런 사소하면서도 깊은 배려심이 있었다. 나는 .. Fuck you, My love 꼬북이가 요즘 내게 자주 쓰는 말이 있다. "Fuck you, my love." 애인 사이에 왜 이런 욕을 쓰는지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Fuck you는 욕인데, 뒤의 my love는 또 뭔지 이해가 안 갈 수도 있겠다. 그래서 이 말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나는 평소에 내 마음대로 행동을 하기 때문에 가끔 꼬북이와 부딪힐 때가 많다. 꼬북이가 싫어하는 행동들을 많이 하는 편인데, 예를 들면 샤워할 때 수건을 들고 들어가지 않아 샤워 끝나면 꼭 수건을 꼬북이에게 달라고 하거나 수건을 가지러 젖은 몸으로 욕실을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면 꼬북이는 내게 수건을 주는 수고로움과 방바닥에 떨어진 물을 닦아야 하는 수고로움을 감당해야 한다. 꼬북이는 "좀 고쳐라."고 하지만, 나는 "알겠다."라고 하면서 .. 모순 모순 텅 빈 허무 속 홀로 빛나는 태양은 우주의 여백을 가득 채운다 태양의 불타는 심장을 움켜쥐려 투사가 되어 달려든다 태양은 맹렬히 자신을 불사르며 온몸을 옥죄어 온다 거대하고 압도적인 원형의 새하얀 화마 헛된 육체를 녹여 백골의 허약한 영만 남겨 놓는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다 그 순간, 태양의 심장에서 태초의 아담이 깨어난다 아담의 포악한 손아귀는 앙상한 목을 비틀고 절규에 찬 비명소리가 참지 못하고 터져 나온다 황금빛 빗줄기가 추적추적 내려온다 몸부림치던 육체를 쓰다듬으며 상처를 치유한다 아담은 허약한 영을 노려보지만 다가올 수 없다 끝나지 않을 대치, 불안한 휴전 아아, 벗어나고 싶다 그러나, 이 영원한 대치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육체가 불타고 영이 훼손되고 다시 회복된다 해도, 이것은 원의 .. 나는 오늘도 카페에 간다 나는 오늘도 카페에 간다. 가족들과 외식을 하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기 전, 뭔가 그냥 집에 들어가면 아쉬울 것 같은데 하는 마음에 가족들에게 카페에 가자고 얘기한다. 부모님은 뭐 하러 한 잔에 5천 원 하는 커피에 돈을 쓰냐며 반대했지만, 결국 내가 이겼다. 카페에 들어가 메뉴를 고르고 각자 취향에 맞는 커피를 고른다. 진동벨이 울리고 쟁반에 담긴 커피를 테이블로 가져와 가족들의 앞에 놓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우리는 카페를 어떤 용도로 이용하는가. 많은 사람들은 카페를 여러 용도로 이용하고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공부를 하기 위해, 어떤 사람들은 동료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 또 어떤 사람들은 인테리어나 분위기가 좋아서 카페를 이용할 것이다. 나는 주변 사람들과 대.. 이전 1 ··· 10 11 12 13 14 15 16 다음